여기 올라간 셜리 만의 사진은 1997년 작품입니다.
유명해진 셜리 만의 사진은 자기 아이들을 촬영한 것이었지요.
며칠전에 보았던 다큐멘타리에서의 셜리 만의 작업은 바늘구멍 카메라를 입에 넣고선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을 촬영하고 친구를 촬영하고 하더군요.
그런 사진의 특징은 눈 모양으로 사진이 나옵니다. 이미지 써클같이 검은 테두리가 눈 모양으로 나오던데...
SALLY MANN
by Orville O. Clarke, Jr.
(Gagosian Gallery, Beverly Hills) Sally Mann has become a familiar name to anyone who follows contemporary photography. Her most familiar, and controversial, imagery focused on the lives of her three children. These were tales of innocence, or of innocence about to be shattered by the intrusion of the adult world with its lies, violence, and a thousand other sins. They are powerful works evocative of age, so pure and because of their purity, so vulnerable. It is the tragedy of growing up.
Those of you expecting more of the same are in for a big surprise, but an even bigger treat. Mann exhibits a selection of 15 prints from her new series "Mother Land: Recent Georgia and Virginia Landscapes". All are large format photographs (30 x 40" and 38 x 48") printed by the artist, with frames designed by her also. Now we find her turning the camera to the land from which much of her early inspiration came.
More important is the feel of these images. The artist has attempted to capture the spirit of Pictorialsim, which dominated photography from the 1890's to the end of the 1930's. This style, which attempted to imitate painting, particularly that of Tonalists such as James McNeil Whistler, is known for its dramatic effects achieved through the use of special lenses and bold manipulation in the darkroom. The images are dominated by a fuzzy, dark, moody and atmospheric quality.
Considering Mann's love of collecting old lenses it is not surprising that she should turn to an old genre to explore a familiar theme--our loss of innocence. The unsoiled image of the land recalls the pristine work of early photographic pioneers Carleton Watkins and Timothy O'Sullivan, who captured the beauty of the Old West. Instead of focusing on young children to remind us of what we have lost, the land now symbolically stands for the various stages of humankind. This wonderful Victorian sensibility fits in nicely with her previous work, which always had a subtle 19th-Century quality.
Mann is entering into a dramatic dialogue with the history of her medium, not only evident in the use of Pictorialist style, but for the sense of chance that she allows to enter into the picture-making process. Her use of these antique, and often less than perfect, lenses give her unexpected results. This is the opposite of the extreme control exerted by her predecessors. Furthermore, she does not "correct" the images in the darkroom, simply printing whatever she is given. It is the disparate combination of factors that make the work so powerful. They have an archaic feel, while retaining critical elements of modernism.
The large scale further enforces this feeling of antique prints created in an artesian environment. They function as haunting evocations of a gentler age: a hay cart in the field, a wall of split wood rails; a moody lake or an old fort. These highly charged pastoral scenes are inhabited by our imaginations, which quickly fill the scene with possibility.
The unique power possessed by our most gifted artists is the ability to help us see in a new way. Here, Mann reinvestigates the land of her native South, leaving a series of majestic and unforgettable images which serve as simple mirrors on the complexity of modern life and the responsibility of becoming an adult: the pain of growing up. This is her best work to date, and holds their own with the masters of the medium's past.
출처 - http://artscenecal.com/ArticlesFile/Archive/Articles1997/Articles0997/SMannA.html
셜리만은 동시대의 사진가들이 추종하는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그녀의 가장 친숙하고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녀의 세 아이들의 삶에 촛점 맞추고 있다. 그것들은 거짓, 폭력 그리고 다른 수천가지의 원죄들을 가진 어른들의
침입에 의해서 산산히 부서질것만 같은 순진무구한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순수해서, 너무나 순수해서 금방이라도
손상받을것만 같았던 시간들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성장의 한 비극이기도 하다.
위와같은 것들을 똑같이 기대했던 사람들은 더 크게 놀랄일이지만 더 크게 다루어져야만 될것 있다. 셜리만은
"어머니의 땅: 최근의 조지아와 버지니아 풍경"이라는 15점의 새로운 프린트를 가지고 전시회를 가졌다.
모든것은 셜리만이 직접 디자인한 포맷의 대형포맷(30x40"rhk 38x48") 사진들이다. 우리는 셜리만이 카메라를
그녀의 초창기 영감을 불러있으킨 땅으로 향하고 있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것은 그들 이미지들의 느낌이다. 예술가들은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유행했었던 픽토리얼리즘
(Pictorialism)의 영감을 받을려고 시도했었다. 이 스타일은 회화를 모방할려는 시도였었고, 특별한 렌즈를
사용하고 암실에서 대담한 조작(bold manipulation ?)을 통해서 극적인 효과를 성취할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미지들은 혼란스럽고, 어둡고, 분위기에 의해서 지배된다.
수집된 옛날 렌즈들을 좋아하는 셜리만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친숙한 주제- 순진무구함의 상실-들을 다루기
위해서 예전의 장르로 선회한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더렵혀지지 않은 땅의 이미지는 오래된 서부지역을
담았었던 초창기 사진의 개척자인 Carleton Watkins과 티모시 셜리반(Timothy O'Sullivan)의 초창기 작업들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잃어버렸던것들을 생각나게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촛점을 맞추는 대신, 땅는
인간의 다양한 면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빅토리안 감성은 19세기적인 미묘한 감성들을 표현했었던
그녀의 예전 작업들과 잘 들어 맞는다.
셜리만은 픽토리얼리즘 스타일의 사용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진을 만드는 과정안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했던 매개체의 역사와 극적인 조우를 했다. 과거유물로서, 완벽하지는 않은 렌즈들의 사용은
그녀에게 기대치 못했던 결과들을 안겨주었다. 이것은 그녀의 전작들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가했던
것들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암실에서 단순한 프린트들을 얻는것외에는 이미지들에 대해서
어떠한 조정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작업이 그렇게 파워풀하도록 만드는 요소들과의 이질적인
결합이다. 그것들은 모더니즘의 비평적 요소를 품으면서 고전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커다란 스케일은 예술적인 환경안에서 창조된 고전전 프린트들에 대한 느낌을 강화한다. 그것들은
온화했던 시대- 평야에 건초마차, 쪼개진 나무 울타리; 분위기 있는 호수나 오래된 항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고양된 전원적 분위기는 우리의 상상속에서 존재한다.
타고난 예술들에 의해서 소유된 힘은 우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셜리만은 어른이 되는것에 대한 책임- 성장의 고통-과 복잡한 일련의 현대삶에 대한 단순한 반영으로서
역활을 하는 장엄하고 잊을수 없는 이미지들을 남기게 한, 그녀의 순수한 South 땅을 되새긴다.
이것은 그녀의 현재까지 최고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