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은 제가 애착(?)을 갖고 있는 이론이지요.
어쨋든 신디 셔먼의 사진을 보면서 유하의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어떤 미학적 감동이 깃들이거나 하지는 않지만
대신 친근한 느낌으로 술술 넘겨보는 사이 다가오는 재미, 신선함은
모더니즘에서 주창하는 '아우라'와는 다른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 내는 것 같습니다.
대중문화(에로영화, 만화, 무협소설 등..)를 시의 내용으로 적극 끌어들인 유하의 시에는
딱히 외우거나 음미할만한 싯구절은 없지만(전혀 없지는 않지만서도)
셔먼의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이미지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예술의 형식과 관점을 뛰어넘는 발랄함이 보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두 작가가 서로 다르지만..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다다이즘이 그러하였듯 '전망'이 없는 이론이란게 제 생각입니다.
또는 그 생명이 짧을 수 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고..
셔먼에게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것처럼..
그래도 꽤 오랫동안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용해 온걸 보면 셔먼은 대단한 작가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전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애착을 떨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도전정신'을 좋아하거든요. 중심-권력에 대한 해체..
하여 늘 문제제기의 역할로서만 유효할지 모르는 이론입니다만..
포스트 모더니즘.. 모르면 좀 어때..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예술작품의 감상이 이론적 틀에 얽매여서는 곤란하겠지요..
자기 멋대로 보는 것이 우선은 기본인 것 같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하는 해석들은 참고나 하면 그만인 것이고..
음.. 글고..
삶에 있어서 '타이밍'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됩니다. 일종의 숙명이랄 수 있는데..
너무 일찍 만났네, 늦게 마주친 인연이네.. 어쩌구 하듯이
예술가들도 시대를 잘못 만났네, 잘 타고났네 그런 소리들을 하잖아요.
예술가들이 뜨고 지는 데 시대를 만나는 '타이밍'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대를 읽고 시대와 몸을 섞는 작가들도 있고요.
작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러한 점들도 고려되어야 할 듯..
눈 오는 날의 고속도로를 좋아합니다.
길위, 무수한 상념의 날개들..
이만총총.
여의도로 밀려가는 강변도로
막막한 앞길을 버리고 문득 강물에 투항하고 싶다
한때 만발했던 꿈들이 허기진 하이에나 울음처럼
스쳐간다 오후 5시 반
에프 엠에서 흘러나오는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추억은 먼지 낀 유행가의 몸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그 먼 길을 달려오고야 만다
기억의 황사바람이여, 트랜지스터 라디오 잡음같이 쏟아지던
태양빛, 미소를 뒤로 모으로 나무에 기대 선 소녀
파르르 성냥불처럼 점화되던 첫 설레임의 비릿함, 몇 번의 사랑
그리고 마음의 서툰 저녁을 불러 모아 별빛을 치유하던 날들 ......
나는 눈물처럼 와해된다
단 하나 무너짐을 위해 생의 날개는 그토록 퍼덕였던가
저만치, 존재의 무게를 버리고 곤두박질치는 물새떼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에
오래 견디어 낸 상처의 불빛은
그다지도 환하게 삶의 노을을 읽어 버린다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쓸쓸하게 허물어진다는 것,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저녁이 나를 알아보리라
세상의 모든 저녁을 걸으며 사랑 또한 자욱하게 늙어 가리라
하지만 끝내 머물지 않는 마음이여, 이 추억 그치면
세월은 다시 흔적 없는 타오름에 몸을 싣고
이마 하나로 허공을 들어 올리는 물새처럼 나 지금,
다만 견디기 위해 꿈꾸러 간다
자갈밭을 걸으며
자갈밭을 걸어간다
삶에 대하여 쉼 없이 재잘대며
내게도 침묵의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자갈에 비한다면......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갔다
무수하게 야비한 내가 그들을 밟고 지나갔다
증오만큼의 참회, 그리고
새가 아니기에 터럭처럼 가벼워지지 않는 상처
자갈밭을 걸어간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우리는 서로에게 자갈이 되어주길 원했다
나는 지금, 자갈처럼 단련되려면 아직 멀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난 알고 있다, 저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고 또 지나도
자갈의 속마음엔 끝내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상처는 어찌할 수 없이, 해가 지는 쪽으로 기울어감으로
정작 나의 두려움은
사랑의 틈새에서 서서히 돋아날 굳은살,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
여기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쑥국 먹고 체해 죽은 귀신
울음의 쑥국새, 농약을 이기면 물 위를 걸어가는 소금쟁이,
주인을 들에 방복하고 저 홀로 늙어나는 흑염소, 사향 냄새로
들풀을 물들이며 날아오는 사향제비나비, 빈 돼지우리 옆에
피어난 달개비꽃, 삶의 얇은 물결 위에 아슬아슬 떠 있는
것들, 그들이 그렇게 겨우 존재할 때까지, 난 뭘 했을까
바람이 멎을 때 감기는 눈과 비 맞은 사철나무의 중얼거림,
수염 난 옥수수의 너털웃음을 그들은 만졌을지 모른다 겨우
존재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달개비꽃 진저리치며 달빛을 털
때 열리는 티끌 우주의 문, 그 입구는 너무도 투명하여 난
겨우 바라만 볼 뿐이다 아, 겨우 존재하는 슬픔, 보이지 않는
그 목숨들의 건반을 딩동딩동 두드릴 수만 있다면! 난 그들을
경배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대와 나 오랫동안 늦은 밤의 목소리로
혼자 있음에 대해 이야기해왔네
홀로 걸어가는 길의 쓸쓸한 행복과
충분히 깊어지는 나무 그늘의 향기,
그대가 바라보던 저녁 강물처럼
추억과 사색이 한몸을 이루며 흘러가는 풍경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곤 했었네
그러나 이제 그만 그 이야기들은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
어느날인가 그대가 한 사람과의 만남을
비로소 둘이 걷는 길의 잔잔한 떨림을
그 처음을 내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다른 기쁨을 가졌지
혼자서 흐르던 그대 마음의 강물이
또 다른 한줄기의 강물을 만나
더욱 깊은 심연을 이루리라 생각했기에,
지금 그대 곁에 선 한 사람이 봄날처럼 아름다운 건
그대가 혼자 서 있는 나무의 깊이를 알기 때문이라네
그래, 나무는 나무를 바라보는 힘만으로
생명의 산소를 만들고 서로의 잎새를 키운다네
친구여, 그대가 혼자 걸었던 날의 흐르는 강물을
부디 잊지 말길 바라네
서로를 주장하지도 다투지도 않으면서, 마침내
수많은 낯선 만남들이 한몸으로 녹아드는 강물처럼
그대도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스며드는 곳에서 삶의 심연을 얻을 거라 믿고 있네
그렇게 한 인생의 바다에 당도하리라
나는 믿고 있네
그 옛날의 어린 눈빛
지금 홀로 오후의 오솔길의 걷고 있는 나는 정말 나인가
삶은 아직 먼데, 문득 세상의 버려진 외곽으로
나의 대부분이 쏴--빠져나가버린 느낌
그 옛날의 내 어린 눈빛, 바람의 하모니카를 불던
터질 듯한 설레임, 그 여린 입술의 촉감이 있었던 것만 같은데
내 몸은 마음이 찍어낸 헛된 복제품이 불과한가?
내가 나를 잃다니
고개 들면, 햇살은 셀 수 없는 빛의 세월을 탕진하고도
그냥 눈부심인 것을
숟가락은 정작 국물 맛을 모른다던가
나는 눈부심을 그냥 눈부심으로 받아들인다
벅차게 받아들이다가 끝내는 늘 죽음이라는
거대한 상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첫 키스의 기억이라든가, 가령 시를 완성할 때도 그랬다
쾌감의 스파크 뒤로 스며오는 어쩔 수 없는 영혼의 상실감...
나를 순간적으로 죽이면서 도달하는 순간적인 절정의 그 무엇
축제와 죽음이 한 몸으로 만나는 각도에서
지상의 모든 눈부심이 내 청춘의 나머지를 지워버렸으므로
삶이라는 맹목의 붉은 깃발과 쓸쓸한 투우의 콧김
혹은 카니발처럼 씌어지는 시
추억의 나를 뜯어먹으며,
더 이상 뜯어먹을 추억의 내가 없을 때
아, 현실은 환각의 붕어빵인가 아닌가
올려다보면 그대로인 구름... 어디로 갔는가
언덕에 올라 첫 바람을 맞이하던 그 옛날의 어린 눈빛
사랑의 흔적
생선을 발라 먹으며 생각한다
사랑은 연한 살코기 같지만
그래서 달콤하게 발라 먹지만
사랑의 흔적
생선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는구나
나를 발라 먹는 죽음의 세상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내 열애가 지나간 흔적 하나
목젖의 생선가시처럼
기억해 주는 일
소나무의 사소한 흔들림으로
켁켁거려 주는 일
그러나 이 밤의 활홀한 순간이여,
죽음의 아가리에 발라 먹히는
고통의 위력을 빌려, 나
그대의 웃음소리로 잎새 우는
서러운 바람을 만들고
그대의 눈빛으로
교교한 달빛 한 올 만들어 냈으니
이 지상 가득히
내 사랑의 흔적 아닌 것 없지 않는가
땅의 목젖 내 한 몸으로
이다지도 울렁거리지 않는가
비 가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먼 산처럼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 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젖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습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너무 오랜 기다림
강가에 앉아 그리움이 저물도록 그대를 기다렸네
그리움이 마침내 강물과 몸을 바꿀 때까지도
난 움직일 수 없었네
바람 한 톨,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 어둠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모두 그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매순간 반딧불 같은 죽음이 오고
멎을듯한 마음이 지나갔네, 기다림
그 별빛처럼 버려지는 고통에 눈멀어 나 그대를 기다렸네
눈부신 명상입니다
은행잎에 그대가 물들었습니다
그대 노란 눈부심으로
거리를 떠나갑니다
온 산에도 그대가 물들어갑니다
산을 내려온 그대 물든 걸음
사뿐 강물이 받아줍니다
강물 위에 그대 떠내려갑니다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그대 떠내려갑니다
지금껏 난 흘러가는 그대 붙잡으려 했습니다
지친 매미 울음처럼 붙잡으려 했습니다
아아 온 천지에 그대 수없이 물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대 떠내려가는 모습 내게 눈부심이었습니다
그대 떠나보내야 내 사랑 자란다는 걸 알았습니다
은행잎 하나에도
그대 얼굴 물드는 시간입니다
은행나무처럼 나 이제 그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대 노란 눈부심으로 나를 떠나갑니다
떠나는 그대 눈부신 명상입니다
잔잔한 강물 같은 명상입니다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論
―난 느껴요―苦口苦來
우리나라 신식 국자는 무슨 국자? 일명 신식민지 국독자?
처음 코카콜라가 등장했을 때 웬 간장이냐며 국에 뿌린 년도 있긴 있을라
난 느껴요―코카콜라, 언제나 새로운 맛 신식 국독자로 떠먹는 코카콜라
그때마다
톡 쏘는 맛처럼 떠오르는 여자가 있다 코카콜라 씨에프에서
팔꿈치로 남자를 때리며 앙증맞게 웃는 여자, 그 몇 프레임 안 되는 장면
하나가 방영되자마자 연예가 일번지 압구정동 일대가
술렁였댄다 그것 땜에 애인 있는 남자들의 옆구리가 순식간에
멍들었다는데……
왜 그 시에프가 히트했는가에 대한 항간의 썰들은 분분하다
가학으로 상징되는 남자와 피학으로 상징되는 여자의 쏘샬 포지션을
자극적으로 뒤튼 것이 주요했다는 친구도 있고
(놈은 허슬러부터 휴먼 다이제스트에 이르기까지 마조히즘 사디즘에
관한 미국의 온갖 빨간책은 물론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 야한 여자,
권태까지 섭렵한 권태스런 놈이다)
그 씨에프의 콘티는 말야 전세계 장래마저 자국의 문법으로 콘티 짜는
미국의 솜씨니까 당연한 거라구, 잘난 척하는 녀석도 있다
난 전율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심혜진의 보조개 패인 미소
뒤에도 얼마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쾌남아들의 거대한 미소가 도사리고 있는가
하여튼 단 심 초의 미소로 바보상자의 관객들과 쇼부를 끝낸 여자 심혜진
그녀가 요즘 씨에프에서 닦여진 순발력 있는 연기로 은막에서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 제목은 물의 나라
감독은 얼씨구나 양파 껍질처럼 끝없이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데, 그녀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코카콜라를,
삼성 에이 에프 오토 줌 카메라를, 해태 화인쥬시껌을 사고 싶어지는 내
눈알, 나는 본다 저 알몸 위로 오버랩되는......
온 산을 갈아엎는 사람들의 세상을 온통 콜라빛 폐수로 넘실대게 하는
사람들을 이땅을 온갖 욕망의 구매력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을 그리하여
이 지구의 虛를 말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아아 하나뿐인 인격, 하나뿐인
지구
라오쯔의 말씀대로 빈 그릇만이 쓰임이 있는 것
또한 갖가지 색과 음과 맛이, 사람을 질주하는 미친 말처럼 만드는 것
수많은 심혜진들이 허를 상실당하고 반짝별로 사라지는 충무로
차차차여, 오늘도 그녀들의 금테 잔이 출렁출렁 넘치는구나
결국 색이란 건 아무리 벗겨봐야 양파처럼 空이 될 뿐, 아으
난 앞으로 심혜진을 보면 절제를 생각하겠다 목마르면 보리차나
드라이하게 한잔, 쏠리면? 에이 에이즈 땜에......
빈 코카콜라 병은 어따 쓰게, 그거야 화염병으로라도 쓸모가 있으리니
난 느껴요―가끔은 코카콜라 든 심혜진의 미소가 폐수 위에 핀 연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