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왼쪽 구석에 꼭지모자를 쓴 남자와 둥근 뱃사람 모자를 쓴 소년이 프랑스의 북쪽 해안 Cayeus의 해변에 누워있다. 오른쪽 윗부분의 그림자에 가리워진 어두운 물체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림의 나머지는 해변과 돌들이 있는 모래일 것이다. 표면은 점묘화법처럼 주황, 노랑, 파랑, 빨강, 검정 색들의 잡다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색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색들과 매치되지 않는다. 이미지는 두명의 상(象) 때문에 확인 가능하지만, 사실 어느것도 확신 할 수 없다. 만일 두명의 상(象)이 없었다면, 전체적인 패턴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상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우리가 한 때의 여름을 보냈을 장면들에 대한 과거의 시간, 그 시간, 그 해의 시간 혹은 그 날의 시간으로 확대되어 간다. 현장(field)을 구성하는 입자는 이미지 내용을 정의하는 기본이다.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현장은 사람과 모래만큼이나 중요한 이미지 내용이다.
이것이 그가 수집한 오래된 엽서들을 사진적으로 확대해서 전시한 이번 전시에서의 매력이며 기본요소이다. 나는 엽서를 프린트한 정확한 과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원래 손으로 채색된 사진의 재생산(reproduction)-- 어떤 것은 30배정도, 다른 것은 200배 정도까지 이미지를 키운-을 통해서 보여준 색 입자들(color fragements)은 결과적으로 이미지 확대의 증거들이다. 이 이미지는 흑백 이미지들을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손으로 채색을 했던것처럼, 이 쇼에 영감을 불어 넣는 중요한 것이다. 사진의 계조속에 존재하는 물, 공기, 돌, 사람들은 시간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된 방식이 아니라면 우리가 상기할 수 있는 방식이나 기억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색깔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충돌한다.
사진 중앙에 중세 성이 있는 Saint Malo는 다른 시간의 층을 가지고 있다. 시야는 바다로 향한며 땅아래의 어두운 부분에서 넓은 지평선을 가로 지르는 붉은 띠와 노랑과 회색을 포함한 충만한 오랜지색의 밝은 하늘로 향한다. 요새는 갈색,푸른색, 붉은색에 대한 실루엣 영역안으로 들어가고 나오며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요새가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이상한 목적지이며 모순이다.
실제로 240 Biarritz-- 바다에 파도가 일고(sea crashing) 있으며 거대한 양의 물줄기가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다--은 전시 사진들중에서 가장 기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엘거 에서 작품들중 가장 현실적이며 완전하게 추상적이다. 파도의 충돌(crashing)은 색 입자와 강렬하게 매치되는 원자화의 다른 형태이다. 녹색, 파랑, 노랑, 핑크 그리고 검은 점들을 가진 물보라는 어두운 바다를 가로질러 뿌려지고 있다. 오른쪽에 보여지고 있는 푸른색으로 얼룩진 하늘은 우리의 시각을 가로 막고 있다. 사진들을 사진으로 찍음으로써 내밀한 방식으로 그것들이 표면화되고 허용되도록 한다. 에서는 현재를 소비하고 우리의 삶을 소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과거 그리고 역사적인 과거들을 초대한다. 지구는 이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우리가 보는 것처럼 중립적인 장소이다. 나가 보기에 19세기것이라고 가정하는 엽서들로부터 나온 사진들이 나타내는 장소들은 영국 해안과 아틀란틱 대양을 바라보는 프랑스 서부 혹은 북부 해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