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스트 잔더는 독일의 사진작가로 1930년대에 사진관을 하면서 사진을 촬영해 나갔던 작가입니다.
그의 사진 세계는 독일적인 사진 기록 방법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답답해 보이며 평범하게 기록을 하여 나간 작업이지만,
그것이 독일식 신즉물주의적 사진의 세계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 비약적 상상력일까요?
<노피곰닷넷 이원균>
랭거 패치의 사진이 독일의 신즉물주의 사진과 같을까요?
저는 랭거 패치보다는 잔더가 더욱 독일적인 즉물주의로 봅니다.
그의 인간 군상은 개개인을 사회적으로 놓여져 있는 위치에서 촬영이 되어짐으로 인하여 단편적인 인간들로 나타나져있는 것이 아니라 톱니처럼 어울려져서 돌아가고 있는 사회를 나타내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묘사함으로 인하여, 전체를 느끼도록 하는 신즉물주의적 사고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수 많은 인간 군상을 계속 촬영하면서도 별다른 사진적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가장 사진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사진 세상을 만들어 나아간점이 그를 신즉물주의적 사진작가로 생각되게 하여지는 점입니다.
그러한 그의 사진은 현대 독일 사진을 만들어 내는 가장 바탕이 되어집니다.
<노피곰닷넷 이원균>
위의 사진은 제목 아구스트 잔더 너비 22.2 x 높이 29 cm 하드커버의 사진집입니다.
요약 - 20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반(反)표현주의적인 전위예술운동.
본문
신현실주의 또는 독일어로 노이에 자흐리히 카이트라고 한다.
⑴ 미술용어:이 명칭은 1923년 만하임미술관에서 미술관장 하르트라우프가 기획하여 열린 전람회의 이름에서 나왔다. 표현주의가 주관의 표출에만 전념한 나머지 대상의 실재파악을 등한시하고 비합리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데 반대하여, 즉물적인 대상 파악에 의한 실재감의 회복을 기도한 운동이다. 주동한 화가로는 베를린의 다다이즘운동에 가담한 G.그로스 및 O.딕스가 있다. 그로스는 처음 디자인 관계의 일에 종사했고, 또 신문이나 잡지에 풍자적인 데생을 발표하여 인정받았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혼란한 사회에 직면하자 좌익적인 입장에 서서 독일의 군국주의와 부르주아지에 대해 통열한 비판자가 되었다. 한편, 노동자의 아들인 딕스는 사회의 암흑 속에 사는 인간의 비참함과 추악함을 박진감 넘치는 묘사력으로 폭로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크라나하’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밖에 주목되는 화가로는 실내나 정물을 소박한 기법으로 그린 G.슈림프, 기하학적 형태를 골격으로 하여 식물을 그린 A.카놀트 등이 있다. 1925년 평론가 로는 이 운동을 포함한 후기 표현파의 양식을 마적(魔的) 리얼리즘이라고 표현하였다. 나치스의 대두와 함께 이 운동은 박해받아 소멸하였다.
⑵ 문학용어:1920년경부터 나치스 출현까지의 약 10년간 독일문단을 지배했던 문예사조. 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일어난 것으로 자아의 주장이나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 자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기법이다. 또한 표현주의를 거친 리얼리즘이라는 점에서 자연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 물질문명의 범람 등이 이 주장의 배경이 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E.M.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이 대표적 작품이며, 이 밖에 작가로는 A.데프린, R.노이만, C.추크마이어, B.브레히트, E.케스트너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