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현재 횡횡하는 디카식 이미지를 거슬러올라가면 홀가 사진이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제대로 상용되기 전에 디카 바람이 부는 바람에, 한국에도 적용되는 스토린 아닐 것같습니다만.    구십년대 초반인가... 레인맨이라는 영화 엔딩 크레딧 왼쪽에 걸려있는 홀가 사진을 보면서 뻑간 기억이 새롭네요.      의도되지않은 이미지가 보여지는 사람에게 이렇게 생경히 다가올 수도 있다는 노프레임의 강점에 더해, 사진으로 '아무 생각없이 장난을 친다' 는 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사진 작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기계라고 봅니다.     정말 기계 자체의 완성도나 가격을 따져 보면야, 엄청난 성과가 아닐까 합니다.쩝.

올려진 화일은 1999/2000 경에 발표된 사진들입니다.     작업은 그 이전이니까....아마도 홀가가 작업도구로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할 때...라고 보는데요.     갤러리에 걸린 홀가 이미지중 가장 적절히 그 기계의 특성을 살린 예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일반인들은 홀가가 다루기엔 재미있지만 홀가가 가진 성질(고정 노출 시스템, 흐린 이미지)를 이해하기 어려워 제대로된 결과물을 만들기 힘든 문제가 있는 반면, 작가들은 기존에 쓰던 사진어법을 좀 나쁜 카메라에 적용켜 버림으로 홀가로서의 유용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예가 많았습니다.      홀가를 자유롭게 쓸 수없거나, 자유로운 홀가를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우연성과 홀가식 프레이밍이 적절히 혼합된 작업은....지금도 사실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디카식 테이킹의 한 방법을 제시했더라도, 현재의 디카가 기술적으로 보완되는(확인 lcd창,포샾처리)측면이 너무나 많아 홀가와는 다른 노선을 가고 있다고 보구요, 지금보다 홀가가 대중화되어 제대로 쓰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기술이 발달될 수록 실제로 다양하게 쓰였던 여러 사진 재료나 기계들이 없어지는 것이...참 안타깝습니다.

엇! 또 옆길로...    아뭏든 김정수씨도 그 후속작업이 활발히 보이지 않아, 현재 스코어 진행이 어떻게 되는진 알 수 없습니다만.    홀가에 대한 이해도나 대상의 집중에 대한 공력을 우연성과 연계시키는 어법은 대단하다고 보여집니다.    앞으로의 작업을 많이 기대했었는데....약력에 대구에서 조교수를 하고 있다는 한줄이....참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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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단편 - 기억 & 우연의 이중주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나면서 느꼈던 숱한 희열들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온 기억의 파편들이 조합하여 전해지는 이미지들은 잠시나마 이 도시와 주위의 일상적 틀을 떠나게 해 준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시름을 잊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과거사가 무조건 아름답기보다는 각색된 우리의 추억이 그립고 아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내며 시간과 기억에 대해 말한적이 있다. 시간은 감각 즉 향기, 소리. 기후로 채워진 꽃병이라고 하는 그는 시간을 두 가지로 대별 했는데 그 하나는 외적이고 물리적인 시간 즉 객관적시간이다. 이는 동질적 시간으로서 수학적, 물리학적인 측정이 가능한 것, 공간안에 시간을 병렬하는 것으로 일상적이고 과학적인 시간이다. 또 하나의 시간은 우리의 감정상태와 사건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내적, 심리적, 주관적 시간이다.  

즉 객관적 시간과는 전혀 다르게 흐르는, 사람들이 실제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다. 프루스트는 이 주관적 시간으로 인하여 한정적 인간의 존재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동질적 시간에 대한 비판, 시간의 지속개념과 같은 선상에 있다. 김정수의 사진은 이러한 주관적, 개별적, 감각적인 '순수의 시간'을 여실히 카메라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늘 카메라가 그를 뒤쫓아 잔잔하게 시선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94년부터 '기억시리즈'에 몰두하여 기억의 여러 파편들을 모아 과거를 내세우는 등장인물도 없이 그저 스치는 모양으로 사람이 적은 한적한 해변과 거리, 희한하게 장식된 가게 진열대, 문화의 창고인 박물관과 구름낀 하늘, 고풍스런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장식들, 익명의 조각상, 민속촌에서 찍은 열살짜리 아들 희철이, 괌으로 떠난 수학여행중인 학생들, 웨딩드레스 입은 여학생, 폐가의 화장실, 사자모양의 분수, 공항근처 온실의 무성한 식물들, 어두운 지하철 입구 등을 찍고 있다. 기억의 다향함과 변화무쌍한 것을 드러내주는 사진들은 삶에 렌즈를 바싹 대지도, 멀리대지도 않는 시점에서 즉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삶을 관조하도록 한다.

그래서 넘치는 흥분도 없으며 지나친 냉담도 없이 기억의 파편들을 보이면서 사물의 정수(精髓)를 파악하게 한다. 기억은 학습을 통한 기억으로 단순히 의자를 보며 앉는 기구임을 아는 반사적, 습관적 기억 외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에 의해 되살아나는 진정한 추억으로서 기억이 있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으로 침입해 오는 것, 이진정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 기억의 되새김질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질이다. 기억의 흔적은 여러 장소에 존재하며 기억과 정신적 활동은 물질과 분리할 수 없다. 어떤 물체(예를 들면 오줌싸게의 소쿠리, 웨딩드레스, 전봇대, 바닷가 의자, 장승, 육중한 몸, 물가의 쥬스, 챙이 넓은 모자, 검은 선글라스, 날카로운 창살등)가 주는 연상작용이 우리를 알수 없는 심연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우연성이 많이 개입되어 대개 익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프레임 설정이나 카메라의 선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레임상에서 자유로운 경계의 넘나듦이 있고 심지어 같은 사진도 시시에 따라 달리 배열, 조합됨으로서 이미지의 유동성을 지닌다.  

영화속에서 장면이 겹쳐져 한층 재미를 더 하듯이 오버랩 된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 저기 발견된다. 병렬과 겹치기를 통해 상층된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연상망(聯想網)이 생기며 우연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제 3의 이미지가 생산된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찍은 수영복 가게 쇼윈도 장면과 로스엔젤레스의 동상과는 별 관련성이 없으나 두 이미지가 만나 둘을 잇는 어떤 끈이 생기게 된다. 바다를 담은 장면과 이름없는 장승의 결합, 그림자를 등에 업은 사진과 도시 교각의 결합, 박물관 전경과 잘려진 나무의 결합 등은 이러한 경우다. 이중, 삼중의 이미지가 만나서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비현실적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낸다.  

좀 더 아득하게 추억을 밀려오게 하려는 전략일게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은근한 사물에 대한 관심이다. 인물보다는 물적대상을 친숙히 여기며 사물을 통해 독특한 교감을 느끼는 듯하다. 오랫동안배경과 사물이 하나되어 보여지는 평안한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쓰는 카메라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등이 고정되어 있는 간단한 구조의 중국산 홀가이다. 이 카메라는 상대적으로 날카로운 기계 이미지 보다는 소프트한 느낌의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며 촬영대상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며 이중, 삼중의 이미지가 생산되어 예기치 않는 재미를 준다.  

사진매체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우연성'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러한 작업은 매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유도해 낸다. 결국 그의 사진행위는 우연과 기억을 엮는 일, 찰나적이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고정하고 그럼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역활을 하며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 사물이 주는 감각을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다듬고 붙잡는 것, 그것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작가는 엄밀히 말하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을 번안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시금 그의 사진속의 해변과 하늘과 바다를 본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뚫어지게 응시해 본다. 그 형상 뒤에 숨겨진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임경희/ 사진평론. 파리8대학 조형미술학과 박사과정  







:: 작가약력  

1958년 대구생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동대학 예술전공과 졸업

일본 (주)스튜디오 기브 근무

대구대학교 대학원 미술. 디자인 박사과정

현)대구예술대학교 사진영상과 조교수  

  

:: 개인전  

1999년 기억의 단편1994~98(코닥포토싸롱/서울)

Art center 초대전(오사카AV홀/일본)

1997년 기억의 단편(ississ갤러리/교토, 일본)

1996년 메모리(cosmo 갤러리/오사카, 일본)

잃어버린 시간-옴니버스전(롱아일랜드대학/뉴욕)

1992년 도시로 향한 풍경(동아갤러리/대구)

1990년 유로시티2(조선일보 미술관/서울)

유로시티1(동아쇼핑갤러리/대구)

1982년 선감리(현대갤러리/대구)

  
:: 그룹전
  
2000년 사진컬렉션2000전(하우아트 갤러리/서울)

After Time전(하우아트 갤러리/서울)

Sionoe국제청년예술제(Sionoe미술관/일본)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문화예술회관/대구)

1999년 내일로 향한 모색전(문예회관/대구)

1998년 사진, 그 정체성전(동아쇼핑갤러리/대구)

Sionoe국제 청년예술제(Sionoe미술관/일본)

서울사진대전(시립미술관/서울)

우리시대 사진의 상황(문화예술회관/대구)

1997년 서울사진대전(시립미술관/서울)

젊은사진가전(문화예술회관/대구)

사진가 13인 초대전(동아갤러리/대구)

1996년 사진은 사진이다(삼성포토갤러리/서울)

젊은 바람전(문화예술회관/대구)

1995년 대구 현대사진의 좌표(문화예술회관/대구)

1994년 우리, 우리 땅, 우리의 삶전(문화예술회관/대구)

1993년 비무장지대 운동전(시립미술관/서울)

아시아 사진가 10인전(동경철도중앙홀/일본)

1991년 한국사진의 수평전(토탈 미술관/장흥)

1989년 긴테츠 기획전(긴테츠백화점/오사카,일본)

1984년 모습 '84전'(대백갤러리/대구)

1983년 Art Infectious(수공사갤러리/후쿠오카,일본)

1982년 현대사진 7인전(대백갤러리/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