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걸의 꿈

"오늘도 저희 ○○○을 찾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며, 1층 출발합니다.”
여성스러움이 적절히 베어 나오는 단정한 옷차림에 사근사근한 목소리, 미소 띤 얼굴로 깍듯하게
우리를 맞이하는 그녀가 있다.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줄 그녀의 운송수단은 바로 엘리베이터,
이 곳에서 그녀는 무수한 사람들과 마주한다.

늘 사근사근한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가? 예쁜 그녀의 사근사근함에
녹아드는 뭇 남성들이 있는가 하면, 곁눈질로 자신의 몸매와 얼굴을 그녀와 비교해 보는 뭇
여성들도 있을 것이며, 하루종일 서서 저렇게 웃음 지으려면 참 힘들겠다며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목적지로 오르내리는 침묵이 감도는 시간동안 그녀는 우리들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시간은 참으로 짧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되는 그 시간만큼이나 그녀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시간 역시 짧다. 이후 그녀를 다시금 떠올린다면, 그녀는 특정 건물의
특정 색과 디자인의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사근사근하게 인사했던 그녀로 기억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그녀는 엘리베이터 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엘리베이터
걸일 뿐이다. 미소짓고 있는 그녀의 내면엔 어떠한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을까? 어쩜 엘리베이터에서
머무르는 그 시간동안은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없을런지도 모른다.



이런 그녀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은 듯한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데, 왼쪽아래에는 한쪽 벽면 전체가 대형 수족관으로 꾸며져 있고, 그 수족관 안에는
해초들과 엄청난 수의 물고기들이 줄지어 오고 간다. 밝은 조명을 받고 있는 수족관 속 물고기들은
아마도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길과 걸음을 멈추게 하리라.

수족관 살짝 옆으로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여인들이 있고, 시선을 옮겨 정면 위로, 밝은
조명아래 쇼윈도 안에는 정면을 향해 줄지어 옆으로 서 있는 무언가가 있다. 형체를 뚜렷하게 알아볼
수 없지만, 아마도 여러 모양의 옷을 입은 마네킹인 듯 하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오른쪽엔, 이
건물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밝게 조명 받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상하게도 여러 명의 여인들이 타고 있다. 이런저런 궁금증을 담아 이제 사진의 주제가 담겨 있을
법한 가운데를 살펴보니, 넓고 높게 펼쳐진 계단들 위로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자리잡고 있는 여인들이
보인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물고기, 마네킹, 엘리베이터, 여인들을 보았다. 이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엮어 가고 있는 것일까? 이상하면서 궁금해온다.  

먼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건물의 각 층을 오르내릴 그녀들의 하루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는 듯,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높은 건물을 오르내릴 모든 수단들이 다 등장한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이 모든 수단 가운데 그녀들이 있다. 그리고 사진 곳곳 밝은 조명의 수족관과 쇼윈도,
엘리베이터 안에는 물고기와 마네킹, 엘리베이터 걸이 있다.

이들은 이 건물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들로, 우리의 즉각적인 흥미와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결국에는 포장되어진 대표적인 객체로만 기억에 남을, 수명이 길지 않을 일회적인 것들이다.
엘리베이터 걸의 부재한 정체성은 무수한 물고기와 마네킹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



마치 이 커다란 건물 한곳을 메우고 있는 하나의 구성요소로서의 가치만을 지니고 있는 듯한 엘리베이터
걸의, 진정 그녀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부재한 것일까?

젊고 아름다운 그녀들은 분명 갑갑하고 반복되는 일과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녀들은 동료들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위로하며
혹은 힘을 실어 주면서 젊음과 아름다움이 사라져 이 곳을 떠나게 될 언젠가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엘리베이터 걸이라는 같은 정체성으로 살아가지만, 머지 않아 개개인의 마음속에 접어 둔 꿈을
펼치고 갖가지의 모습으로 나아갈 그 날을 떠올릴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우리네가 속한 사회와 우리네의 꿈과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엘리베이터
걸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여성의 전문직업 중 하나로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사회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대기업의 샐러리 맨 역시 엘리베이터 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들도 그들의 젊음과 능력이 다
하는 날, 떠나야 할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렇듯 많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 사진은 일본의 한 여류 사진가의 작품이다. 그녀의 이름은
미와 야나기(Miwa Yanagi, 1967~), 1990년대 이 후 지금까지 뚜렷한 작업 의식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해오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여류 사진가이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가정 교육아래 고등학교
시절까지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그녀가 현재의 기이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안정이 보장되는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으로의 그녀의 삶은 너무나
정형화되어있었다. 규격화 된 사회 속에서의 특정한 위치와 특정한 상황들, 그녀는 이러한 정형화된
사회와 그 속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엘리베이터 걸(Elevator-Girl)”
시리즈는 여느 일본인 여성과 다들 바 없는 야나기, 그녀 자신이 규격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엘리베이터 걸은 그 상징적인 표현 방법으로 설정되었다. 처음엔
엘리베이터 걸을 통한 퍼포먼스 작업을 시작으로 하였지만 이후 사진으로 작업 방법을 바꾸게 된다.

야나기는 백화점이나 지하철 역, 지하 상가 등 대도시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장소에 비개성화된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의 반복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여 일본의 문화와 소비사회의 단면, 자본주의의 가려진
진실을 보여준다. 너무나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잃은 마네킹처럼 보여지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낯설며 초현실적이다.

이러한 애매 모호한 상황의 설정과 표현은 사진 촬영 이후 이루어지는 컴퓨터 작업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된다.
그녀는 컴퓨터 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조합하고, 현실의 공간과 인물을 상상의 공간과 인물로 새롭게 창조해낸다.
그녀의 작업 주제를 더욱 부각시켜 줄 도구로 컴퓨터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 그리고 어느새 너무나 닮아버린 우리네 사회이다. 야나기의 “엘리베이터 걸”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은 우리네의 모습이기도 한지라 낯설지 않다. 반면 서구 세계에서는 동양의
익숙한 단면이 낯설기만 할 것이기에, 야나기의 “엘리베이터 걸”은 세계의 관심 속에 머무르게 되나 보다.

오늘도 수도 없이 오르내릴 작은 엘리베이터 속의 그녀는 남모를 고민 가운데 미래를 준비하는 꿈을 꾸리라...
꿈꾸는 그녀의 얼굴은 늘 미소가 가득인 체 말이다...

글/육영혜(bisori22@hotmail.com)


출처 : http://www.zoomin.co.kr/webzine/webzine_detail.asp?nodeid=127&bbs_id=2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