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독일에 살면서 전쟁에 대한 경험과 요셉 보이스의 영향을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작가는 몇명이나 될까? 그 어느것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것처럼 느껴지고
피하고 싶지만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디터 아펠트 또한 그 숙명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외길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먼 길을 여행한 끝에
보여주는 작가의 내면 세계 모습은 당연히 암울하고 고뇌의 찬 모습일 수 밖에 없으리라.

디터 아펠트의 작품을 보면 전면적으로 흐르는 우울한 분위기는 배제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살아 남아야하는 자의 숙명처럼 경험을 한자의 숙명은 그 길위에서도
고통의 상처를 끌어 안고 가야하고 숨기고 싶지만 들어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요셉보이스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간 작가의 모습으로서,
사진을 매체로 사용한 작가로서 그의 작품 모습은 분명 사회적인 영향력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요셉 보이스의 일면을 배제하고 오히려 샤머니즘적인 모습만을 남긴 허물을
벗은 매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고독하고 철저하게 고통받는 자의 모습을 들어내고 그것은 일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는 작가의 신체는 긴 시간 고통을 인내하고 있음을 역력히 보여주는
상흔들이 존재한다. 이 상흔들은 결코 단 시간에 만들어진것이 아니며 먼 역사의 길위에서
마주친 고통스러운 모습의 현현일 것이다. 결코 인생은 행복한 모습만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 일면에 감추어진 고통의 순간을 벗어나야만 된다고 역설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디터 아펠트의 사진속에 들어난 고통이 한 순간의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긴 상처를 간직하게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