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from 컬티즌]

지난 20세기 통틀어 가장 반항적이었던, 그래서 더 매력적인 1960~70년대는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기존 사회문화의 가치나 질서가 심각하게 도전 받았던 시  기이기도 했죠. 페미니즘, 게이컬쳐, 프리섹스. 이런 단어들이 진보의 척도로 가늠되던 이 시기는 과연 "性혁명의 시기"로 불릴 만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를 우리는 시각 예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인간(man)'을 발견한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규범이자 미의 기준이었던 해부학적 인간형(과 그 기준인 백인남성)이 추상미술의 열풍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죠. 그러나 한편으로 추상미술, 그리고 그 이상인 '순수미'는 신체의 재현을 숨겼을 뿐, 서구 백인 남성의 그 '고결한 정신성'을 계승하는 High Art의 대표 주자였던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며, 공(公)적인 것"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개인을 지배하는 가치와 문화를 문제시했던 이 시기 예술가들은, 사진에서 진부해진 미술의 어휘를 넘어설 돌파구를 찾아 형식의 동어반복으로 물신화된 추상미술을 대치했고, 한동안 사라졌던 '몸'을 테마로 불러들여 성혁명의 시대를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고급미술 안에서 남성의 성적 이미지를 분출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꼽히는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1988)도 그 중 한 사람이었죠.

"내 작품의 의도는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언제나 강조했던 그는 성과 동성애에 관한 모든 금기와 미스터리의 극한을 탐구했던 사진가였습니다. 1977년 "포트레이트" "플라워" "에로틱픽추얼스", 이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메이플소프는 확고하게 재능 있는 사진가로서 인정을 받았죠. 70년대 중·후반, 메이플소프는 가죽과 체인이 도발적인 게이들의 사도매조히즘 스타일이나 첼시 호텔에서 7년간 동거했다는 애인인 펑크록 가수이자 시인 패티 스미스 Patti Smith의 사진 등,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삶과 경험을 반영한 작업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는 일반적이며 정상적이라고 서구문화가 규정한 신체가 아닌 소위 '이반'의 신체와 섹슈얼리티를 관찰자가 아닌 옹호자, 또는 참여자로서 표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메이플소프의 작업은 극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이합니다. 뿔난 악마, 기관총을 든 테러리스트로부터 마르셀 뒤샹의 로즈 셀라비, 앤디 워홀의 여장남자(transvestites) 계보를 이은 변화무쌍한 셀프포트레이트 시리즈, 그리고 루이스 부르주아, 수잔 손탁, 리처드 기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망라하는 명사들의 초상 사진, 남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꽃 사진, 흑인 남성 누드 등이 이 시기의 주요 작품들로 꼽히는데, 이런 변화에는 80년대 들어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된 AIDS 공포와 그에 발맞춰 미국 사회에 유포된 신보수주의 물결 그리고 메이플소프 자신도 이 '시대의 천형'에 감염되어 예전처럼 현장을 찾아다니는 활동이 불가능해진 사정이 있습니다.

이 시기 흑인 남성 누드는 70년대의 사도매조히즘 작업을 계승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출한 작업이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달라집니다. 구성과 형태의 고전적이고 형식화된 미감이 절정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1988년 개최된 유고전의 이름처럼 "완벽의 순간(the Perfect Moment)'들이었습니다. 흑인 게이 남성들의 신체를 전면에 드러내어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체의 아름다움, 그 전형이 전복되는 순간이기도 했죠. 물론 그 정치적 함의가 다르긴 하지만 말콤 X의 "Black is Beautiful"은 메이플소프에게서 새로운 조명을 받았다고 여겨집니다. 메이플소프는 이처럼 일반적인 미의 전형 바깥에 위치한 피사체의 존엄성과 미를 찾아냈던 것이죠.

그러나 유고전에 전시된 그의 도발적인 사진들은 미의회에서 거부되었고 전통적으로 신앙심이 강하던 신시내티에서는 음란 판정을 받는 등, 그의 예술은 지난 십 여년 간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이즈음에는 [바디스케이프]의 저자 미르조예프의 견해처럼 그 자신은 백인남성의 입장에 있으면서 '흑인 남성=미학적·성적 오브제'라는 흑인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가장 나쁜 상투 어구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죠.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작용한 듯 인터넷에서 메이플소프의 훌륭한 자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군요. 그가 이미 고인이며, 도발적이고 외설적인 그의 작업을 아직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masters-of-photography는 메이플소프의 비교적 온건한(?) 작품들과 그에 관한 여러 서적, 비평문 등의 자료들과 관련 사이트 링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이트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이플소프뿐만 아니라 다른 명사진가들이 알파벳 순서로, 단순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 이 사이트의 강점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비단 메이플소프의 경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겠지요. 그의 삶과 작품이 보여준 빛과 그림자가 우리, 그리고 이 시대 내부의 양지·음지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결코 저 하나만은 아닐 겁니다.


** 초상사진이나 누드를 보면 금속성, 단단함, 힘.. 들이 이루는 긴장..
     이런 게 그의 작품 기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님 말구... -.,-)
     여성 누드를 봐도 곡선을 드러내는 다른 것들과 달리 힘찬 골격이며 근육이
     느껴지더군요. 그가 즐겨입었다던 차림도 그렇구..
     여튼, 진동선 씨 성적 정체성을 명명하는데 있어 명칭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 헷갈리게끔..  성적(gender-사회적 성(역할))으론 남성이고 섹슈얼리티는 바이(양성)이고
     작업에서는 게이컬쳐를 대변했다. 이렇게 정리하면 깔끔할 것 같은데..
  
     메이플소프 홈페이지 --> http://www.mapplethor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