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의 전개 -- 고쿠보 아키라 지음

먼저 저자(고쿠보 아키라)는 낸 골딘 사진이 일상성에 따른 새로운 시각의 접근임을 서두에 밝히고 있다.
아이린 코윈의 가족사진과 낸의 사진을 비교함으로서 아키라는 “아이린 코윈의 사진이 시뮬라시옹을 구사하여 현실을 암시하는 이미지 게임 인 것에 반해 낸 골딘의 사진은 생생한  현실, 인간의 현존(actuality)을 강인하게 파악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수법은 스냅숏, 다큐멘터리이다. 단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코윈의 작품이 비록 연출된 가족사진이라고는 하지만 확고한 가족제도 위에서 성립하고 있다 그러나 골딘의 작품은 가족을 배제시킨 후에 전개되는 생활상인 것이다.”라고..


골딘의 사진 주제가 되고 있는 주로 광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소리 높여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해방으로 향하는 아우트로(outlaw)들이다. 게이, 레즈비언, 마약 상습 복용자, 걸인 실로 과격한 사람들의 사진집이다. 골딘의 사진은 한 장 한 장을 보아도 강렬하지만 원래 시각적인 일기로서 기록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문맥에 따라 눈여겨보면 보다 더 농밀한 의미가 떠오른다.
필자는 1982년 휘트니 미술관의 [비엔날레]전에서, 골딘의 같은 주제에 의한 45분간에 걸친 800장의 슬라이드 쇼를 본 적이 있다. 이때는 잇달아 투영되는 아우트로의 영상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이 쇼만으로 그녀의 작품을 논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행히도 86년에 사진집 <성적 종속물에 관한 발라드>가 간행되었기 때문에 이 사진집에 의거하여 그녀의 작품을 이야기해 나가자.

그녀의 사진집은 호모,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가 축으로 되어있고, 그 외에 남녀 커플, 어린이 , 양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스냅도 포함되어 있다. 섹슈얼리티에 직접 관계없는 것도 그녀의 사진 문맥 속에 편입되면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것이 불가사의하다. 이것들은 10년간의 기록이지만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기획에 의하여 재구성되었다.
우선 골딘과 동거하고 있던 남자친구와의 특정 없는 포트레이트로 시작하여 밀납 박물관의 남녀 인형, 그리고 다음으로 그녀의 양친에게로 이동한 후, 여자 친구들, 남자 친구들의 포트레이트로 이어져 나간다. 그 많은 친구들은 알몸 또는 반라의 상태에서 도취된 표정을 띄고 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이탈한 아우트로로서 대다수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이다. 알몸의 사진은 문자 그대로 옷이 벗겨진 ‘알몸(naked)’이며, 케네스 클라크가 말하는 ‘재구성된 육체의 이미지’의 '나체(nude)‘는 아니다. 충격적인 것은 호모나 레즈비언의 커플이 끌어안고 있는 것, 자위행위에 빠져 있는 호모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들 사진에는 영국, 서독, 멕시코에서 촬영된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골딘이 거주하고 있는 뉴욕의 하층지구인 로워 이스트 사이드의 낡은 아파트 안에서 찍은 것이다.
이 사진집의 사진 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인 것은 셀프 포트레이트 <구타당한 낸>(1984)일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구타당하여 눈이 부어오르고 흰자위가 피를 뿜어내듯이 충혈 되어 있는 그녀 자신의 모습이 찍혀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기 때문에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골딘의 생활이 상식의 궤도를 벗어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이 등장하고 있는 <요크모텔의 낸과 딕키>(1980)도 기묘한 사진이다. 모발이 거의 없는 노년의 한 남자가 그녀를 뒤에서 꼭 껴안고 있다. 이때 그녀의 하반신은 알몸인 것이다. 골딘은 단호하게 말한다. “ 나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꾸미지 않고 보여주고 싶다. - 이것은 나의 삶을 찍은 생생한 사진이다.” 틀림없이 이들 사진이 갖는 현장감은 치열한 것이다.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진에 찍힌 아우트로들이 반사적으로 카메라의 렌즈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연기를 하고 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카메라가 없는 상태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광각렌즈에 스트로보가 달린 카메라를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골딘 자신도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 “ 모두들 나의 손은 카메라와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카메라가 없는 편이 더욱 좋다.” 그러나 필자는 대상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결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차이야말로 사진이라는 장치가 갖는 독자적인 공간이며 그녀의 사진의 강도 높은 충격이기 때문이다.
사진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20여장의 커플 사진이다. 이 사진들은 남녀의 포옹, 직접적인 성교, 호모와 레즈비언의 갖가지 섹슈얼한 교접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모두 한결같이 커플을 이루고 있다. 왜 커플로 끝내야만 하는가? 일종의 해피엔드라고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골딘 자신도 바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오류를 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언하자면,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궁극점은 두 명이라는 단위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공동체의 환상, 아니 강박관념인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현대사회의 탈출자 즉 아우트로와 기형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뇌리에 궁극적으로 새겨져있는 강박관념은 ‘두 명(커플)’인 것이다. “나의 사진은 인간관계(relation)이지 관찰기록(observation)이 아니다. 나도 당사자의 한 사람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골딘과 같이 ‘무너져라, 무너져라, 더욱 무너져라“로 강력히 빌고 있는 사람이나 산산이 파괴된 해방점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지막 단위는 커플임을 이 사진집 <성적 종속물에 관한 발라드>는 말하고 있다. 그녀는 사진집의 서문의 마지막을 ”이것은 나의가족이다. 나의 역사인 것이다“라는 말로써 맺고 있다. 그녀는 가족제도로부터 탈출했지만 그것은 고독한 단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인간관계를 찾는 것 이었다. 섹슈얼리티를 좌표축으로 하여...  따라서 이들 등장인물들은 해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탐구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볼  때 그 만신창이의 처절한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진집을 사진 평론가 앤디 그랜드버그는 <뉴욕타임즈>에서 다음과 같이 극찬하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이 50년대라면 낸 골딘의 <성적....  >은 80년대의 것이다.
골딘은 그녀 세대의 에티튜드(attitude)일 뿐 아니라,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증언하는 뛰어난 사진을 제작했다.”


낸 골딘은 1953년에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보스턴에서 소녀 시대를 보냈다. 그 후 메사추세츠 주 터프트 대학(Tufts University)을 졸업하고, 보스턴 (School Of Fine Arts)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그녀는 14세 때에 집을 나와 18세에 사진을 시작했다. 골딘이 집을 떠나 과격한 사진으로 향한 것은 두 가지의 커다란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그녀가 11세 때에 18세의 언니가 자살했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골딘도 언니와 마찬가지로 자살 할 것이라는 정신분석 전문의의 진단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언니가 자살한 일주일 뒤에 연배의 남자에게 유혹되어 성을 체험하면서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집을 떠나 그녀는 16세 때 드럭 퀸(여장의 게이)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이것을 기록하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완벽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진이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뉴욕으로 진출한 이듬해인 1979년에 어떤 클럽에서 열린 록 뮤지션인 프랭크 자파의 생일 파티에서 슬라이드 쇼를 갖고서부터였다. 81년에 ‘키친’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같은 해 휘트니 미술관의 다운타운 별관에서의 그룹 쇼에 의해 두각을 나타냈으며, 1985년에 휘트니 미술관의 <비엔날레>전에 선출되어 80년대의 대표적인 사진가로서 지위를 굳혔다. 골딘의 독자성은 아우트로의 섹슈얼리티를 핵으로 한 인간관계를 문제 삼아 시대의 지층의 차이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낸 골딘의 작업에 대한 고쿠보 아키라의 글을 옮겨 담았습니다.
낸 골딘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